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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열기와 생기를 왕성하게 드러내는 여름이에요.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 아래 온갖 색으로 피어나는 자연을 바라보자면 살아 있음을 온 감각으로 느끼게 만드는 여름이랄까요. 한데 이 느낌은 갑작스레 들이닥친 올해 비 소식처럼, 내 온몸의 존재를 지나치게 증명하며 쏟아지는 땀방울처럼 때론 너무 소란스럽고 부담스럽게 다가오기도 하지요. 그럴 때면 적요한 겨울의 풍경이 떠오르기도 한답니다. 고요히 나풀대며 떠다니는 눈이 온 하늘을 드리운 그런 풍경이요.


“흰빛은 색이 아니네. 그것은 색의 부재이지. 눈을 감고 무엇을 보이는지 말해주게.” (『눈』, 94쪽)

『눈』에서 유코는 눈을 사랑하는 하이쿠 시인입니다. 눈을 그리는 유코의 시는 이미 아름답다고 정평이 나 있었지만 “절망적으로” 희기만 했기에 유코는 다른 색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자 대시인 소세키를 찾아가지요. 소세키는 그를 찾아온 제자에게 눈의 흰빛은 색이 아님을, 색이 모두 비워진 고요한 자리임을 밝힙니다.

눈의 빛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모든 것이 비워진 그 자리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요?

여기 눈에 대한 또다른 상상력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은 스페인 작가 아구스틴 페르난데즈 마요의 한 소설에서 주인공은 떨어지는 눈을 바라봅니다. 그는 새삼 모든 눈송이가 한 중심점과 균등하게 이어진 여섯 개의 꼭짓점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아요. 모든 힘이 균형을 이루기에 어떤 불안함도 없는 눈송이의 중심점은 사실상 비어 있는 공간이지만 그 자체로 모든 것들이 모이는 안전한 벙커이자 망실網室인 셈이죠. 소설의 주인공은 이어서 어떤 장소에 대해서 상상합니다. 눈송이의 중심점처럼 한 사람의 모든 기억이 밀집되어 있는 장소, 그곳에 가는 순간 모든 것을 다 생생히 기억하게 될 장소를 말이죠.

다시 『눈』 속 유코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소세키의 가르침 덕에(또 무엇보다 한 여인과의 사랑을 통해) 유코는 색을 그리는 법을 배웁니다. 그리고 돌고 돌아 다시 흰색을 그릴 수 있게 되지요. 다만 이제는 “절망적”이지 않은, 색이 비어 있기에 모든 것이 떠오르는 흰빛의 눈을 말이죠.

여름의 정점에서 여름의 모든 푸르름과 찬란함이 사라진 겨울의 흰빛을 꿈꿔봅니다. 그때의 눈 속 흰빛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될까요, 여러분의 흰빛은 어떤 기억을 머금고 있을까요.